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본인은 미식돼지이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살아가고 싶다.
여기엔 마시는 것도 포함되어있다.
맛없는 음료는 사양한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는 탄산은 물론
음료 자체를 잘 안 먹는다.
특히 탄산의 경우
메인디쉬를 방해하는 느낌이라
거의 먹지 않는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물만 마신다.
아무래도 미식의 범주에 있어서
음료는 사이드다.
절대 해적왕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일에 예외는 있는 법
루피는 될 수 없어도 조로까진 될 수 있는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바로
커피다.
본인에게 있어 커피란
비모의 건전지와 같다.
일정량의 카페인을 소모하고
다 떨어지기 전에 채워줘야 하는
에너지원 같은 존재다.
어렵게 말했지만 중독이란 이야기다.
카페인 중독
위가 얼마나 버텨줄지는 모르겠다.
커피를 즐기는 지경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적어도 먹어온 양으로는
작은 연못 정도는 채우지 않을까 싶다.
나름 커피 맛의 기준도 있다.
주로 고소하고 묵직한 맛과 향의 원두를 선호하는데
어느 나라 원두인지는 전혀 모른다.
알게 뭐야 그냥 입으로 넣는 거지
그리고 산미가 있는 원두는
정말이지 왜 먹을까 싶을 정도로 싫어한다.
음식도 신맛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새콤달콤도 별로 안 좋아한다.
땅콩카라멜 미만 잡.
그리고 오늘
선배님과의 미팅 겸 점심식사를 마치고
광주 산수동 보암커피로 식후커 하러 갔다.
지난번 왔을 때는 머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기에
오늘만큼은
사장님의 시그니처인 드립 커피를 시도해보기로 했다.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원두로
드립을 내려주신다.
다음 달부터 원두가 몇 가지 변경될 예정이기에
안 되는 원두도 있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사장님께 여쭤보고
에티오피아 구지 지게사를 추천받아 주문했다.
위 메뉴들에 있는 원두들은
대부분 산미가 있다고 하셔서
사실 조금 망설여졌다.
지금까지 마셔봤던
산미가 있는 커피들은
대부분 별로였기에 이번에도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고소하고 묵직한 맛도 같이 주문했다.
커피가 나왔다.
맛을 봤다.
믿기지 않았다.
산미다.
신맛이 아닌 산미였다.
산뜻한 산미의 언덕을 지나고 나니
달큰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맛이었다.
산뜻한 산미로 시작했던 맛은
삼켜질 때쯤
아련한 단맛이 되어 풍미를 한층 더 이끌어준다.
마치 진짜 잘 익힌 미디움레어의 스테이크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동과 같았다.
이제껏 알고 있던 산미가 있는 커피는
신맛이었다.
분명한 격차가 느껴졌다.
천천히 향을 음미하면서
커피를 마신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숨은 강자를 만난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쁜 컵들도 많이 가지고 계시더라.
탐나는 잔이 몇 개 보였다.
또 돈 쓰고 싶다.
큰 일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을 유지하고 있어서
더욱 좋았다.
바 테이블 형식으로 되어있어
커피에 대해 사장님과 이야기하면서 마실 수도 있다.
그러나 보통 사장님은 자리를 비우신다.
옆방에서 원두 볶고 계신다.
모든 원두는 사장님이 직접 로스팅하시고 판매도 하신다.
일반적인 카페 메뉴들도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으면
드립 커피를 추천한다.
커피의 다양한 맛을 찾고 있다면
적극 추천한다.